카테고리 없음 / / 2026. 2. 17. 00:00

낮추는 몸짓에 담긴 가장 높은 축복

반응형

설날은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닙니다.

농경 사회였던 우리 조상들에게 새해의 시작은 곧 '생존의 시작'이었습니다.

씨를 뿌리기 전, 하늘의 뜻을 묻고 조상의 지혜를 빌려 마음을 단단히 묶는 의식이었죠.

그래서 설날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는 날입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전,

나의 뿌리를 먼저 확인하는 본질적인 시간인 셈입니다.

 

설날의 진정한 가치는 변화가 아닌 연결에 있습니다.

차례상 위의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세대를 건너온 기억이자 시간의 다리입니다.

 

과거: 조상에게 올리는 감사의 마음

현재: 부모에게 전하는 깊은 존경

미래: 아이들에게 건네는 전통의 온기

 

우리는 절을 올리며 고개를 숙이지만,

사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단단한 매개체가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확인합니다.

 

세배는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낮추는 행위에는

'비움과 채움'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몸을 낮출 때 비로소 복을 담을 공간이 생긴다."

세배는 복을 받는 행위이기 이전에,

복을 담기 위해 나를 비우는 과정입니다.

세뱃돈 봉투 속에 담긴 것은 화폐의 가치를 넘어,

"너의 한 해를 온 마음 다해 응원한다"는 기대와 책임,

그리고 사랑입니다.

 

설날 아침의 까치 소리가 길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까치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새해를 기다리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평범한 새소리를

축복으로 바꾼 것일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선물처럼 들리는 법이니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설날의 풍경은 변해갑니다.

 

세뱃돈을 기다리던 아이에서,

덕담이 부담스러운 청년을 지나,

이제는 따뜻한 덕담을 건네는 어른이 됩니다.

 

설날은 우리를 조용히 이동시킵니다.

기대하는 자리에서 책임지는 자리로.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 해를 더 책임질 용기가 생겼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떡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설날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올해 당신은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새로 시작할 것인가?”

복은 멀리서 찾아오는 횡재가 아닙니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진심을 전하는 그 겸손한 순간,

복은 이미 우리 마음 한가운데 들어와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