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극한의 고통 속에서는 인간성이 가장 먼저 마모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저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그 편견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깨뜨립니다.
소련의 강제 수용소(굴라그)라는,
인간의 이름이 번호로 대체된 지옥 같은 공간에서 주인공 슈호프가 보낸
'어느 운 좋은 하루'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품격을 비춥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나는 슈호프가 되어 차가운 수용소 식당에 앉아 있게 됩니다.
배고픔은 이성을 마비시킬 법도 한데, 그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무릎 위에 경건하게 모자를 내려놓고,
보잘것없는 수프 한 그릇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성찬례를 집전하는 사제와 같습니다.
남들이 허겁지겁 국물을 들이킬 때,
그는 숟가락 끝에 걸리는 작은 생선 가시 하나까지도 온전하게 대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는 죄수가 아니라,
자기 삶의 주권자입니다.
독자로서 느끼는 가슴 속 응어리는 아마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짐승처럼 살기를 강요받는 곳에서 끝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그 '경건한 태도'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슈호프의 노동은 더욱 경이롭습니다.
영하 수십 도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작업장,
모르타르는 금방이라도 얼어붙으려 합니다.
하지만 슈호프는 그저 '시간 때우기' 식의 강제 노역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르타르를 고르게 펴 바르고,
벽돌 하나하나의 수평을 맞추는 일에 자신의 온 존재를 던집니다.
"접합선이 윗줄 벽돌 중앙에 오도록 해야 한다.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재빨리 흙손 자루로 두드려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미지 속 글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 또한 숨을 죽인 채 벽돌의 수평을 살피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그에게 이 벽은 단순한 수용소의 건물이 아닙니다.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질서'이자, 강제 노역을 '예술'과 '노동'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저항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치밀어 오르는 슬픔은,
그가 처한 환경의 비참함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그 비참함 속에서도 너무나 꼿꼿하게 서 있는 한 인간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입니다.
슈호프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식사와
노동이라는 일상의 행위를 통해 자신만의 성소를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용소에 갇혀 있지는 않지만,
각자의 삶이라는 전장에서 때때로 영혼의 허기를 느끼고 방향을 잃곤 합니다.
슈호프가 맞춘 벽돌의 수평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상을 어떤 마음으로 쌓아 올리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슈호프의 '운 좋은 하루'가 남긴 잔잔한 여운이 가슴 속에 깊게 고입니다.
슬픔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지옥에서도 인간은 스스로를 지켜낼 성소를 지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201쪽의 차가운 눈바람 사이로 따스하게 스며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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