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는 삼시세끼 밥 먹듯이”

반응형

 

“동기부여는 삼시세끼 밥 먹듯이”

 

이 말은 의지가 강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오히려 의지를 믿지 말라는 조언에 가깝다.

우리는 너무 자주 ‘불타오르는 순간’을 기다린다.

마음이 뜨거워지면 공부를 시작하고,

감동적인 강연을 들으면 인생이 바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불은 늘 차갑게 식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좌절한다.

“난 꾸준하지 못해.”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방식이다.

 

밥은 동기부여가 있어야 먹지 않는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먹는다.

먹지 않으면 몸이 무너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공부와 독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재미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영역으로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에 미뤄지는 것이다.

 

공부를 ‘기분 좋은 선택지’로 두는 한,

우리는 늘 내일로 넘길 수 있다.

인간은 고결한 결단보다 반복되는 환경에 더 쉽게 길들여진다.

그래서 진짜 변화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구조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듯, 점심시간 뒤에 책을 펼치듯,

하루의 특정 순간에 공부가 끼어들도록 설계해야 한다.

의지가 아니라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책을 읽으며 좋은 강연을 듣고,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비밀도 여기에 있다.

재미는 선행 조건이 아니다.

재미는 결과다. 처음부터 재미있어서 시작한 사람은 드물다.

다만 반복 속에서 맥락이 쌓이고, 문장이 연결되고, 이해가 깊어질 때 어느 순간

‘아, 이게 이런 이야기였구나’ 하는 쾌감이 찾아온다.

그때 비로소 공부는 노동에서 놀이로 성질을 바꾼다.

 

많은 사람이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일상 속에 공부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면, 우리는 자극으로 버틴다.

하지만 자극은 배고픔을 잠시 잊게 할 뿐, 몸을 살찌우지 않는다.

반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분량을 읽고 듣는 사람은,

어느새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정체성이 습관을 낳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정체성을 만든다.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결심을 반복하지 않는다.

이미 결정해둔 삶을 산다.

오늘 할지 말지를 묻지 않고, 오늘도 한다.

밥을 먹듯, 이를 닦듯, 책을 펼친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깊이를 만든다.

 

동기부여를 삼시세끼처럼 다루자는 말의 진짜 뜻은 이것이다.

더 뜨거워지려 애쓰지 말고, 더 자주 먹어라.

더 큰 결심을 세우지 말고, 더 작은 반복을 놓지 마라.

삶은 한 번의 각성이 아니라, 매일의 식사로 유지된다.

그리고 공부 역시 그렇다.

오늘도 조용히 한 끼를 챙기듯,

한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만이 끝내 멀리 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