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다 나를 먼저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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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옳다고 느끼는 것을 하세요. 무엇을 하든 비난받게 될 테니까요.”
– 엘리너 루스벨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순간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익숙한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혹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비난들이
우리의 삶을 조용히 조율한다.
우리는 그 시선에 맞추기 위해 조금씩 나를 깎아내고, 필요 이상으로 조심해지고,
때로는 스스로를 의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삶을 오래 들여다보면, 한 가지 아이러니한 진실이 보인다.
아무리 신중하게 살아도 비난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하면 오버한다 하고, 가만히 있으면 무책임하다 하고,
말을 많이 하면 가볍다 하고, 말이 없으면 밉다 한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세상의 모든 평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눈치를 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대 위에서 언제나 관객의 표정을 살피며 연기하는 배우처럼.
바로 이 지점에서 루스벨트의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무엇을 하든 비난은 따라온다. 그렇다면 차라리 마음이 옳다고 느끼는 길을 선택하라.”
 
이 말은 단순한 용기의 촉구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선언에 가깝다.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선이 우리를 규정한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혹은 오해받지 않기 위해
끝없이 내 행동을 조정하고, 감정을 숨기고, 욕망을 눌러놓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깨닫게 된다.
그 모든 조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누군가는 불만을 품고, 누군가는 나를 오해하고,
누군가는 이유 없이 나를 싫어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로.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따뜻함도 오해되고, 침묵도 오해되며, 열정도 오해되고, 게으름도 오해된다.
그렇다면 오해받을까 봐 움츠러드는 건 의미가 없다.
움츠러든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오해의 대상이 될 테니까.
진짜 후회는 대개 다른 곳에서 생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데에서,
내 마음이 움직였지만
용기가 부족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데에서.
삶의 중심을 다시 내 안으로 가져오라는 메시지는
이 시대에 더 큰 울림을 준다.
과하게 드러내도 비난받고, 조용하면 무시당하는 시대에
진짜 필요한 건 ‘눈치의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기준을 회복하는 기술이다.
 
어차피 비난은 삶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니 그림자를 두려워하기보다,
그림자를 끌고 갈 만큼 단단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
마음이 옳다고 느끼는 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 책임 속에서 성장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나를 오해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
그는 이미 세상의 판단을 넘어선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비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가진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결국 삶을 가장 깊고 자유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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