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이 질문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이다.
영웅 테세우스가 타던 배는 세월 속에서 조금씩 낡아갔다.
목재 한 조각이 썩으면 새 조각으로 바꾸고, 닳은 곳은 다시 깎아 맞추었다.
그러다 결국 어느 날, 배의 모든 부품이 완전히 교체되었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배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이 문제는 결국 ‘정체성(identity)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우리의 근본적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하다.
신체의 세포는 몇 년마다 거의 모두 바뀌고,
감정의 결은 나도 모르게 다른 형태로 침전되며,
내면의 믿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나’라는 이름 하나로 자신을 부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철학자들은 정체성을 물질이 아닌 ‘지속성’에서 찾는다고 말한다.
즉,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변치 않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경험의 흐름이다.
테세우스의 배가 모든 부품을 바꾼 뒤에도 동일한 배로 간주되는 이유는,
목재의 분량이 아니라 그 배를 통해 이어져 온 항해의 시간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삶의 파도에 부딪힐 때마다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바뀐다.
상실은 우리를 재편하고,
사랑은 우리의 방향을 바꾸며,
실패는 오래된 신념을 해체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나”라는 말을 쓴다.
이는 내 몸과 마음의 구성 요소가 무엇으로 교체되었든,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선택해온 의미가 하나의 서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체성이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진행 중인 문장이다.
우리는 그 문장을 끊임없이 고치고 덧붙이며, 때로는 지우고 다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문장의 일부가 달라졌다고 해서 문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수정과 변화가 문장을 더 깊게 만든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데 있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 너무 다르다.”
“이렇게 변한 내가 진짜 나일까?”
하지만 테세우스의 배는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변했다는 것은 항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잃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정체성의 소멸’이 아니라 ‘정체성의 이동’이다.
삶은 우리를 하루하루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되던 방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자신만의 궤적을 남기며 나아간다.
그러니 때로는 묻지 말자.
“나는 예전과 같을까?”가 아니라
“나는 어디로 향하는가?”를.
정체성은 과거의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선택하는 의지와 앞으로 이어갈 삶의 방향 속에서 비로소 빛난다.
부품이 무엇으로 교체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배가 어떤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언젠가 삶이 다시 우리에게 질문할 것이다.
“너는 여전히 너인가?”
그때 우리는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더욱 선명한 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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