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있었지만, 그는 치매 환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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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아들이 평생 존경해 온 아버지의
뇌를 부검하며 마주한 진실은 가혹했습니다.
현미경 렌즈 너머 비친 아버지의 뇌는
이미 알츠하이머라는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였습니다.
단백질 찌꺼기인 플라크가 가득했고,
신경세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스러져 있었습니다.
의학적 상식대로라면 아버지는
이미 수년 전부터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채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치매 환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정정한 모습으로
매일 아침 신문을 탐독하셨고,
어제 읽은 책의 구절을 인용하며
아들과 토론을 즐기셨습니다.
오후면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 산책로를 누비던 그에게서
질병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육체라는 하드웨어는 분명 고장 난 상태였지만,
'아버지'라는 소프트웨어는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의 저서
'우아한 노년(Aging with Grace)'은
의학계의 고정관념을 뒤흔든 '수녀 연구'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폭로합니다.
치매 병변이 뇌를 가득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죽는 순간까지 명석한 정신을 유지했던
수녀들의 기록은 '의사 아들과 아버지'의 실화가
무슨 뜻인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기적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는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입니다.
이는 단순히 머리가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치명적인 질병이 뇌라는 메인 도로를 끊어놓았을 때,
미리 닦아놓은 수많은 '우회로'를 통해
삶을 지속하는 능력입니다.
 
아버님이 매일 반복했던 독서는
뇌 세포 사이에 새로운 다리를 놓는 작업이었고,
거르지 않았던 운동은 그 다리를 지탱하는
튼튼한 기둥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 속에 거대한
'비상용 발전기'를 돌리고 계셨던 셈입니다.
뇌라는 집의 서까래가 썩어가고 있었음에도,
아버님이 평생 쌓아온 지적·신체적 습관들이
거대한 보조 기둥이 되어
지붕이 무너지지 않도록 끝까지 버텨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유전자나 노화라는 운명 앞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 뒤로 숨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사례는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당신의 뇌가 무너질 때를 대비해
어떤 골목길을 만들어 두었는가?"
 
생물학적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소낙비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 비에 젖어 삶이 엉망이 되느냐,
아니면 미리 준비한 튼튼한 우산 아래서
빗소리를 즐기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버님은 치매라는 불청객이
문을 두드리는 줄도 모를 만큼,
매 순간을 배움과 움직임으로 꽉 채워 사셨습니다.
그분에게 치매는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성(城)이었던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의학적 승전보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읽는 문장 한 줄,
귀찮음을 무릅쓰고 내딛는 발걸음 한 번이
우리 생의 마지막 방어선이 된다는 준엄한 가르침입니다.
비록 뇌는 쇠락할지언정,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아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아버님은 당신의 몸을 통해 그 희망을 아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질병조차 침범할 수 없었던
그 고귀한 인격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자기 관리'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신의 뇌는 망가질 수 있어도,
당신이라는 세계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이 위대한 반전은
이제 우리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우회로'를 만들고 계십니까?
아버님의 삶을 기억하며,
지금 바로 책 한 권을 펼치거나
운동화 끈을 묶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다가올 운명을 이기는
가장 우아한 반격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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