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피는 ‘나는 옳다’에서 흘렀다”

반응형

 

인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칼도, 총도, 폭탄도 아니었다.
가장 많은 피를 부른 말은 언제나 이 한 문장이었다.
“나는 옳다.”

이 문장은 놀라울 만큼 평범하다.
누군가를 찌르지도 않고, 당장 폭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문장이 마음속에서 단단히 자리 잡는 순간,
세계는 둘로 갈라진다.
옳은 나와 틀린 너.
그리고 그 경계선 위에서, 피는 너무도 쉽게 흐른다.

전쟁은 늘 정의의 언어로 시작됐다.
학살은 언제나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됐다.
종교, 이념, 민족, 국가
이 모든 이름 뒤에는 공통된 확신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옳고, 저들은 틀렸다.”

이 확신이 무서운 이유는,
그 안에 스스로를 의심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옳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고,
나는 옳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할 필요도 없다.
결국 이해는 사라지고, 판단만 남는다.
그리고 판단은 곧 처벌로 바뀐다.

문제는 이 비극이 거대한 역사 속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
댓글 하나, 회의실 한가운데, 가족 식탁 위에서조차
“나는 옳다”는 생각은 작은 전쟁을 만든다.
상대의 말은 맥락을 잃고,
의도는 왜곡되며,
대화는 승패를 가르는 싸움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옳은 생각은 자신을 쉽게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옳다고 확신할수록,
그 생각은 점점 굳어지고,
굳어진 생각은 다른 가능성을 베어낸다.
그때부터 옳음은 진리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 위험을 경고해 왔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무지의 고백으로 사유를 시작했다.
반면 가장 폭력적인 시대들은 늘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의심하지 않는 정의, 질문하지 않는 신념
그 끝에는 언제나 침묵하거나 쓰러진 사람들이 남았다.

어쩌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옳음이 아니라,
옳음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용기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문장은
약함이 아니라,
피를 멈추게 하는 유일한 브레이크다.

세계는 아직도 수많은 ‘나는 옳다’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이 부딪힐 때마다
보이지 않는 피가 흘러내린다.
만약 우리가 정말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새로운 정답을 찾기 전에
먼저 이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혹시, 내가 틀렸을 가능성은 없을까?”

피는 늘 확신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역사는 조용히 속삭인다.
겸손만이, 그 흐름을 멈출 수 있다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