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묶을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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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던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바다를 지나야 하는 순간이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자는 누구든
이성을 잃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아무리 소리쳐도,
절대 나를 풀어주지 말아라.”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돛대에 묶는다.
 
이 장면이 위대한 이유는 오디세우스의
의지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자신의 의지력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을 떠올릴 때
‘강한 정신력’을 말한다.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 끝까지 버티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
하지만 현실에서 의지력은 생각보다 허약하다.
피곤할 때, 외로울 때, 보상이 눈앞에 있을 때
의지는 언제든 방향을 바꾼다.
 
오디세우스는 이 인간적인 약함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영웅이니 괜찮을 것이다”라고 착각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스스로에게서 결정권을 빼앗는 선택을 했다.
유혹과 싸우지 않고, 유혹 앞에서
무력해질 자신을 미리 봉인한 것이다.
 
이 장면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우리 역시 매일 세이렌의 노래 속을 항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즉각적인 쾌락, 쉬운 선택, 미루기의 달콤함.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한 뒤 스스로를 탓한다.
“왜 또 참지 못했을까?”
하지만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의지력이 약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의지력에 모든 걸 맡긴 구조가 문제일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시험하지 않는다.
야식을 끊고 싶은 사람은 냉장고를 비우고,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휴대폰을 시야에서 치운다.
의지로 이기려 하지 않고
환경과 구조로 자신을 돕는다.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묶인 것은 패배가 아니다.
그건 포기나 항복이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의 전략이었다.
그는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해 자유를 잠시 위임한 이다.
 
어쩌면 진짜 강함이란
끝까지 버티는 힘이 아니라
무너질 순간을 미리 아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에 묶여야 하고
무엇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야 하는가.
 
의지력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힘은
생각보다 오래, 조용히 우리 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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