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줘야 한다-호혜의 원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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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늘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오지 않고,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인색할까?”
하지만 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다.
세상은 요청에 반응하기보다
태도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태도의 시작점에는
늘 같은 문장이 놓여 있다.
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줘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바란다.
인정받고 싶고, 선택받고 싶고,
조금은 더 따뜻한 대우를 받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는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왜 나한테만 인색하지?”
“나는 왜 늘 뒤에만 서 있을까?”
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세상은 점점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질문을 하나만 바꿔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그럼..
“나는 먼저 준 적이 있었을까?”
 
호혜의 원칙은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내는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은 받은 만큼 마음을 열고,
존중받은 만큼 존중하려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원칙을 너무 자주
‘거래’로 착각한다는 데 있다.
“이만큼 했으니, 너도 해야지.”
이 순간, 호혜는 이미 깨진다.
그건 나눔이 아니라 요구가 되기 때문이다.
 
진짜 호혜는
돌아올 것을 계산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먼저 웃어주는 사람,
먼저 인사하는 사람,
먼저 이해하려는 사람,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사람.
이상하게도
그 사람 옆에서는 마음이 느슨해진다.
경계가 풀리고,
말이 조금 더 진짜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무언가를 돌려준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사랑받으면 사랑하겠다고,
인정받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기회를 주면 진심을 보이겠다고.
하지만 세상은
그 순서를 바꾸는 사람에게 반응한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
먼저 성실한 사람,
먼저 믿어주는 사람.
그들은 바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미 자신이 원하는 세계의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짧은 순간,
눈앞의 이익만 보면 손해일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 사람이 얻는 것은
돈보다 오래 남는 것들이다.
신뢰, 관계, 그리고 선택받을 확률.
결국 우리는
내가 먼저 건넨 태도의 크기만큼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냉소를 주면 냉소가 돌아오고,
따뜻함을 주면
따뜻한 얼굴들이 남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왜 아무도 나에게 주지 않을까?” 대신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나는 오늘, 무엇을 먼저 주었을까?”
당신은 어떤가.
오늘 하루,
당신이 먼저 내민 것은
말이었을까, 태도였을까,
아니면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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