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 고객의 니즈를 이용한 상술 -그리고 우리가 느꼈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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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보자.
우리는 이미 수없이 그 버튼을 눌러왔다.
피곤한 하루 끝, 소파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켠 밤.
“내일 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른다.
빠르면 새벽, 늦어도 다음 날 문 앞에 놓인 상자.

그 순간, 묘하게 마음이 놓인다.
뭔가를 잘 해낸 것 같은 기분.
오늘 하루도 버텼다는 작은 보상처럼.

 

그래서 쿠팡 사태를 보며
우리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침묵한다.
왜냐하면 너무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고객의 니즈를 이용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구조 안에 기꺼이 들어가 있었다.
필요해서 샀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떠올려보면 이런 순간이 더 많다.

“그냥 있으면 편할 것 같아서.”
“언젠간 쓸 것 같아서.”
“다들 사는 것 같아서.”

물론, 정말 필요해서
당장 사야 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 선택들 중 많은 부분은
필요라기보다,
빨리 도착하면
오늘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
하나는 정리된 것 같을 거라는
기대에 가까웠다.


상술은 교묘하다.
“이걸 사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당신 요즘 많이 힘들죠?”
“이 정도는 누려도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방어하지 못한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하게
우리의 하루를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쿠팡 사태에서 정말 불편한 지점은
기업의 탐욕보다도,
우리가 얼마나 쉽게 설득당해왔는지다.


빠른 배송이 좋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편했다.
그 편리함에 길들여진 대가를
이제야 마주하고 있는 것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나약해서가 아니다.
이 사회가 늘 지친 상태의 인간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쁨, 비교, 불안 속에서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즉각적인 만족은 너무 강력한 유혹이다.

그래서 이건 비난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그렇게 샀어?”라고 묻는 글도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외로웠는지,
지쳤는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는지.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소비는 조금 달라진다.


물건을 보기 전에
자기 마음을 먼저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상술은 힘을 잃는다.

 

쿠팡 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편리함에 기대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시 선택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오늘 밤, 또다시 결제 버튼 앞에 서게 된다면
한 번만 멈춰보자.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물건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뭘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소비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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