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이 문장만큼 한국인이 사랑하고,
또 가슴 아파하는 소설의 첫 문장이 있을까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주인공 '요조'는 어릴 적부터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공포를 느꼈고,
그 공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씁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는 술과 약물,
그리고 무너진 관계 속에서 결국 스스로에게
'인간실격'이라는 낙인을 찍고 맙니다.
요조의 모습이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 역시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사회적 가면(페르소나)'을 쓰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단톡방에서는 밝은 이모티콘을 남발하지만,
정작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뒤 밀려오는 공허함.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내뱉는 영혼 없는 동조.
요조가 느꼈던 그 '군중 속의 고독'은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풍경입니다.
요조는 "문창살에도 상처를 입는다"고 고백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가느다란 나무 막대일 뿐인 일상의 풍경이,
마음의 피부가 다 벗겨진 그에게는 날카로운 흉기가 됩니다.
그의 불안은 다스려지지 못한 채 정신적 질병으로 번져갔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그는 세상의 모든 작은 기류에도 반응할 만큼
순수하고 섬세한 영혼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요?
다자이 오사무는 이 작품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이 처절한 수기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묻습니다.
불안은 결함이 아닌 '인간의 증거'입니다.
요조는 자신을 '실격'이라 불렀지만,
사실 타인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완벽한 척하는 세상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다면,
그건 당신이 틀린 게 아니라 그만큼
진실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증거입니다.
가면을 벗을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요조에게 단 한 명이라도
"너, 지금 억지로 웃고 있구나?"라고 말하며
그를 안아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성공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은 '안전한 관계'입니다.
《인간실격》을 덮으며 우리는 묘한 위로를 받습니다.
"나만 이렇게 불안한 게 아니었구나",
"나만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이죠.
오늘 하루, 당신의 문창살은 안녕했나요?
혹시 너무 날카로운 것들에 마음을 베이지는 않았나요?
요조의 슬픈 뒷모습을 보며,
오늘 밤은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면 뒤의 당신도 충분히 애썼어.
실격 같은 건 없어.
당신은 그저 사람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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