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미장센보다 잔혹했던, 어느 평범한 가장의 ‘피투성’
우리는 때로 거장의 이름 앞에 냉소적이 되곤 한다.박찬욱이라는 이름이 주는 특유의 탐미주의적 폭력성과 인위적인 구도는누군가에게는 찬란한 예술이지만,누군가에게는 피로한 허세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넷플릭스 화면 속 를 재생하며,나는 일종의 방어기제를 세웠다.‘이번에도 그저 화려한 지옥도겠지’라는 무심한 기대감으로 말이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예상대로였다.박찬욱 특유의 차가운 미장센과 집요한 카메라 워킹은 여전했다.그러나 극이 후반부로 치닫고,이병헌과 손예진의 일그러진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 시작할 때,나의 방어기제는 무너졌다.그곳에는 거장의 스타일이 아니라,살아남기 위해 벼랑 끝으로 등 떠밀린 인간의 비명이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상에 ‘던져진 존재(Gewor..
"악력, 철봉에 매달리기가 꼭 필요한 이유" - 악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힘을 생각할 때 팔, 다리, 근육의 크기를 떠올린다.하지만 인생을 버티게 하는 힘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바로 손에 쥐는 힘, 악력이다. 철봉에 매달리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처음엔 여유롭다. 팔도 괜찮고, 몸도 가볍다.하지만 몇 초가 지나면 손바닥이 먼저 비명을 지른다.팔보다 먼저 포기하고 싶어지는 건 언제나 손이다. 악력이 약하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잘 못 드는 문제가 아니다.넘어졌을 때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지팡이나 난간을 붙잡지 못하며,낙상 위험이 급격히 올라간다.실제로 악력은 전신 근력, 허리 안정성, 생존율과도 연결된 지표로 쓰인다.즉, 악력은 손의 문제가 아니라몸 전체와 삶의 지속력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이 중요한 힘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 악력은 ..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지금 당장 멈춰라”
우리가 자주 쓰는 말.“그럴 여유가 없어.” 시간이 없어서.돈이 없어서.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라서. 이 말은 아주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린다.하지만 이 문장은 생각보다 잔인하다.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생각이 멈추기 때문이다.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여기까지만 보겠다.스스로에게 내리는 사고의 종료 선언이다. 이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뇌는 해결책을 찾는 일을 포기한다.대안은 사라지고, 가능성은 접히며,“현실”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버린다.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그 여유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머릿속을 깨운다.불가능을 전제로 하던 사고가조건을 재배치하는 사고로 바뀐다. 시간이 ..
떨어뜨려도 되는 공, 절대 깨뜨리면 안 되는 공
우리는 모두 저글러처럼 살아간다.집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섯 개의 공을 동시에 던지고 받는다.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정직.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동안우리는 이 공들을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으려손에 힘을 잔뜩 준 채 살아간다. 처음에는 모든 공이 똑같아 보인다.하나라도 놓치면 인생이 무너질 것 같고,특히 ‘일’이라는 공은절대 떨어뜨려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가족과의 약속을 미루고,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며,친구의 연락에 “다음에 보자”고 답한다.가끔은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선택도 감수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일이라는 공은 고무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 오른다.야근을 줄였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고,잠시 속도를 늦췄다고기회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
“강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묶을 줄 아는 사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던 오디세우스가세이렌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바다를 지나야 하는 순간이다.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자는 누구든 이성을 잃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아무리 소리쳐도,절대 나를 풀어주지 말아라.”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돛대에 묶는다. 이 장면이 위대한 이유는 오디세우스의 의지력이 강해서가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다.그는 자신의 의지력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을 떠올릴 때 ‘강한 정신력’을 말한다.유혹을 이겨내는 사람, 끝까지 버티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사람.하지만 현실에서 의지력은 생각보다 허약하다.피곤할 때, 외..
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줘야 한다-호혜의 원칙에 대하여
왜 나는 늘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오지 않고,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왜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인색할까?”하지만 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친다.세상은 요청에 반응하기보다태도에 반응한다는 사실을.그리고 그 태도의 시작점에는늘 같은 문장이 놓여 있다.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줘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바란다.인정받고 싶고, 선택받고 싶고,조금은 더 따뜻한 대우를 받고 싶다.그런데 이상하게도마음속에는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왜 나한테만 인색하지?”“나는 왜 늘 뒤에만 서 있을까?”이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세상은 점점 차갑게 느껴진다.하지만 질문을 하나만 바꿔보면풍경이 달..
